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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항복을 할 것인가, 아니면 서경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강화를 선택할 것인가' 

993년, 고려 성종과 대신들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남하한 거란 장수 소손녕의 협박에 사색이 됐다. 어떤 선택을 하든 고려는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빨리 죽느냐, 아니면 천천히 죽어가느냐의 차이일뿐.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고 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급성장한 거란은 중국 동북지역의 연운 16주를 평정한 뒤, 946년 국호를 요(遼)로 고치고 마침내 중원 정벌을 꿈꿨다. 거란은 당시 중국 대륙을 차지하고 있던 송(宋)과의 일전을 앞두고, 후방의 위험요소인 고려를 제압하기위해 소손녕을 내려보낸 것이었다.

고심하던 고려 조정은 일단 무조건 항복보다는 '서경 이북의 땅을 거란에 떼어주고 화친을 맺자'는 할지론(割地論)을 선택했다. 일단 시간을 벌어보자는 것. 

그러나 문관 출신의 서희(徐熙, 942~998)는 "싸워보지도 않고 적에게 땅을 떼어주는 것은 만세에 치욕으로 남을 것"이라며 소손녕과 담판을 짓겠다며 자신을 사자로 보내줄 것을 자청했다.

서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선데는 이유가 있었다. 소손녕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거란의 군사력이 정말로 고려를 압도한다면 신속하게 수도 개경을 포위해 외부와의 교통망을 끊는 것이 상식인데, 그렇지 않고 멀찍히 떨어져서 엄포만 놓고 고려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송과의 결전을 앞둔 거란이 고려와 전면전으로 싸워 힘을 낭비할 의사가 없고, 군사의 수가 80만명이란 것도 과장됐다고 확신한 서희는 실제로 소손녕과의 담판을 통해 상황을 180도로 반전시켰다. 

앞서 송나라에 2차례나 사신으로 다녀온 바 있는 서희는 국제 정세에 밝았다. 서희의 정세 판단은 정확했다. 실제로 거란은 고려와의 국교회복(친교)만 보장되면 싸울 이유가 없다는 서희의 주장이 내심 반가웠다. 소손녕은 '후방의 화근을 없앴다'는 생각에 고려와 화친을 맺으면서 성대한 잔치까지 벌인후 물러갔다. 

여기에다 당시 거란과 고려 사이에 진을치고 있던 여진족을 몰아내기로 합의했다. 고려는 여진족이 차지하고 있던 강동 6주를 확립함으로써 오히려 고려의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대하는 성과까지 거뒀다. 

우리 역사에서 가장 빛나는 외교성과로 평가받는 서희의 담판은 국가적 위기가 돌발하는 오늘날에도 많은 교훈을 던져준다.

국가나 기업에게 '위기'는 항상 찾아오기 마련이다. 서희의 담판 사례를 보면,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첫 번째 단계는 정확한 정세 판단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지난 4일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 3가지 품목에 대해 '화이트리스트' 대상에서 제외시킨다고 발표했다. 원료 공급을 끊음으로써 우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 타격을 주겠다는 의도다. 

일본 정부의 발표이후, 국내에선 다양하면서도 흥미로운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소손녕의 협박를 받고 멘붕이 되버린 고려 조정 대신들이 연상되는 모습도 있다. 

'외교적 노력'이라는 표현으로 순화됐지만 일각에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겠다'는 굴욕이라도 감수하라는 황당한 주장도 나온다.   

그것이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판단한 결과인지 아니면 진영 논리때문에 정부를 깍아내리기 위해 위기의 본질을 애써 과장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국적과 정체성이 의심될만한 주장들이다. 일본 아베 정권의 도발에 정상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힘을 빠지게 하는 행위다. 

반도체는 이미 거대한 국제 공조와 세밀한 분업화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 특수성을 가진 분야다. 일본은 '북한으로 일본의 소재 부품이 흘러들어갈 수 있다'는 괘변으로 그동안 멀쩡하게 잘 돌아가던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흐름을 차단했다. 

만약 3~4개월뒤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도 결국 일본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명분과 실리, 모두에서 일본이 불리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발표이후, 수많은 보도들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상식'을 뛰어넘을만한 합리적인 도발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는 도발을 감행한 배경에는 반드시 절박한 이유가 숨어있기 마련이다. 당황하지말고 사안의 본질을 신중하게 재구성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이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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