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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시절, 역사 시험에 자주 틀렸던 문제는 주로 ‘구한말’ 사건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특히 강화도조약(1876년), 임오군란(1882년), 갑신정변(1884년), 동학운동(1894), 을미사변(1895년), 아관파천(1896년), 을사조약(1905) 등 구한말 주요 사건의 순서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출제 형태가 가끔씩 달라지긴했으나 출제의 의도가 달라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출제의 의도가 어떻든 고교 수험생에게 역사는 그저 재미없는 ‘순서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러나 3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출제의 의도’를 분명히 알게됐다. 

역사에 있어 우연이란 없다. ‘역사는 순서’, 즉 필연의 시퀸스(Sequence)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잘못넘기면 그 다음 장면에선 어떤식으르든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른다. 지금 이 순간이 의미없는 하루에 불과할지라도 결국은 역사앞에서는 엄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구한말 사건 문제를 많이 풀다보니 자연스럽게 정답을 찾는 요령을 어느정도 터득하게 됐다. 사건 예시가 다소 다를수는 있겠지만 ‘강화도 조약’이 첫 순서인 것을 먼저 찾았다. 그러면 일단 정답에 접근할 확률이 높았다. 

강화도 조약, 고종 26년에 체결된 이 불평등 조약은 1년전 운요호 사건(1875년)이 직접적인 발단이 됐다. 일본은 한반도의 수심 측량을 이유로 군함 운요호를 강화도 인근 해역에 무단 침입시켰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경고사격을 가하는 강화도 주둔 조선 경비대를 공격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 점령했다. 이는 일본이 앞서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이 강화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는 과정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일본은 개항장(부산, 인천)에서 일본인의 범죄가 발생할 경우 일본인은 일본인의 법률에 의해서만 처벌할 수 있는 치외법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1910년 한일합병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게 짜여진 ‘정한(征韓)’ 시나리오가 전개된다. 강화도조약은 조선의 주권이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우리 근대사의 불행한 시작점이었다. 

2019년 8월 기해년(기해년), 일본의 경제침략이 시작됐다.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필요한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제한을 시작으로, 8월2일에는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대상에서 한국을 제외시켰다.

횡설수설하고 있지만 일본 아베 정부의 경제침략 의도는 이제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반발, 안보상의 이유를 거론하는 것도 어쩌면 명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든다. 

아마도 그들의 진짜 ‘혼네’(本心)는 한국을 경제적으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를 ‘역사 전쟁’으로 엄중하게 봐야하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2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우리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 정부의 조치가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분명한 상황 인식이라고 판단된다. 

이제 전세계가 ‘한-일 경제전쟁’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글로벌 공급망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4일 전세계 주요 증시는 미-중 무역분쟁 갈등의 증폭 등 여러 악재들이 겹치면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우리에게 공격을 가했던 일본도 예외일 수 없었다. 일본 니케이지수는 지난 2일에 이어, 4일에도 크게 하락했다.

일본의 의도가 분명해진 이상, 우리 정부는 어정쩡한 타협보다는 강경 대응을 택했다. 4일 정부는 일본 의존도가 높은 소재·부품·장비산업 연구개발에 향후 7년 동안 7조8000억원을 투입한다는 매머드급 청사진 내놓았다. 

지난 수십년간, 평화로웠던 시장때문에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지 못했던 ‘소재 및 부품개발’ 국산화의 기치가 마침내 올려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정부는 개발과 양산, 판매 연결 등 시장의 선순환을 위해 강력한 세제·금융·규제완화 등 정책 지원도 병행한다고 밝혔다. 

‘강화도조약’ 이후,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국권 찬탈을 막을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가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모두 실패했다. 힘이 없었던데다 그나마 남아있던 힘도 한군데로 결집되지 못하고 사분오열됐다. 

2019년 8월,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숙명처럼 역사의 다음 페이지가 기다리고 있다. 쉽게끝나지 않은 한-일 경제전쟁에서 근거없는 낙관도 경계해야겠지만 근거없는 패배주의와 열등감으로 정부와 국민의 극일(克日)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자해행위도 지양해야 한다. 

소재 및 부품 국산화가 의욕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국내 제조 및 IT장비 업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결기와 각오를 다지지만 한편으론 지금의 이러한 상황 전개에 마음이 한없이 착잡하고 무겁기만하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영의정 유성룡(柳成龍)은 7년 전란의 원인과 전황을 기록한 ‘징비록(懲毖錄)’을 써내려갔다. 징비록은 같은 실수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철저한 반성문이다. ‘징비’ 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뜻이다.
 
아프지만 지금이 이러한 사태를 극복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책임과 실수를 먼저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돼야 한다. 

기초과학을 등한시했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경쟁력있는 생태계를 만들지 못했으며, 지나치게 외형 성장에 몰두한 나머지 본질적 경쟁력의 중요성을 간과했다. 또한 견고하고 촘촘한 글로벌 공급망의 갑작스런 붕괴가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에도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2019년 한-일 경제전쟁’이 끝난 후, ‘신(新) 징비록’을 다시 써야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차분하게 오늘을 복기하고,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모아야한다.  역사는 종결되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아무쪼록 오늘 우리 정부가 발표한 ‘소재·부품·장비산업’ 육성 전략이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극일'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작점이 되기를 소망한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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