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이 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당하다. 조선, 철강, 자동차 등의 부진으로 수출 포트폴리오가 기울어져 있는 상황에서 반도체, 디스플레이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 그동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업계, 학계, 정부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생태계를 꾸리자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각의 이해관계를 받아들이고 유연성 있는 조절이 필수적이다. 첨단산업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 계획을 살펴본다.

 

기사순서

① 허리가 중요…반·디 생태계 구축 현황은?

② 잘 나갈 때 필요한 ‘초격차’ 전략의 필요성

③ 中 굴기에 맞선 첨단산업…핵심은 산학협력

 

‘초격차(超格差)’는 말 그대로 넘볼 수 없는 차이의 격을 뜻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해 비교할 수 없이 부족한 인프라 속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와 같은 첨단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일궜다.

 

당연하지만 모든 것을 잘하기란 불가능했다. 예컨대 반도체는 D램, 디스플레이는 액정표시장치(LCD)에 집중했다. 아날로그 요소가 강한 비(非)메모리나 브라운관(CRT)보다는 차세대 핵심기술을 개발, 선도적으로 시장을 이끌 수 있는 제품을 선택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다.

 

흔히 우리나라 제조업을 말할 때 ‘패스트 팔로우(Fast Follower)’를 빼놓지 않는다. 이제는 따라가는 상황이 아닌 선도주자(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초격차가 필수적이고 여기에는 단순히 양이나 질을 넘어서, 혹은 경쟁자가 하지 못하는 것만 골라서 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의 퀀텀 점프와 마찬가지로 기초를 쌓고 이를 바탕으로 넘어서지 못할 진입장벽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이 LCD로 물량 공세를 펼치고 있으나 OLED로 쉽게 전환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OLED를 잘하려면 LCD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경험이 녹아야 한다. 중국이 LCD를 잘한다는 것은 양을 뜻하는 것이지 그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D램이나 낸드플래시도 마찬가지다. 이들 제품은 경쟁자도 만든다. 양이나 질도 경쟁력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 기업이 앞서 나갈 수 있던 원동력은 고난도 제품을 가장 먼저 만들어 왔던 덕분이다. 시작은 다른 나라나 기업에서 시작하더라도 이를 극대화해 상용화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키워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디스플레이연구조합·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의 ‘미래 디스플레이 핵심기술 개발(1기) 우수과제’ 선정도 같은 맥락이다. 소재, 백플레인, 부수재료, 생산기술 등이 후보로 올랐다. 무엇보다 OLED와 함께 플렉시블을 주제로 삼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디스플레이의 발전 방향이 정형화된 틀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 더 깊숙하게 침투하겠다는 전력이라고 봐야한다. 정보전달 매개체의 본질에 더 충실하겠다는 것. 초격차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함이라고 봐야 한다.

 

초격차를 가능케 하는 것은 결국 잘 나갈 때 힘을 축적하는데 있다. 생태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아무리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이를 상용화하고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일본이 20년 넘게 브라운관(CRT)으로 세계를 호령했으나 LCD는 물론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그리고 OLED에서까지 연거푸 헛발질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수환기자 블로그=기술로 보는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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