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전문 블로그 미디어 = 딜라이트닷넷] IR(기업설명회)에서는 입증되기 어려운 주장이 많이 나온다. 국내에 한정된 내용은 여러 업체 관계자를 취재하다 보면 실체가 밝혀지기도 한다. 그러나 해외 관련 얘기는 전혀 사실 파악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최근 한 디스플레이 장비업체의 A대표는 IR에서 이런 말을 했다. 

“중국 패널사의 경우 일반적으로 알려진 규모보다 훨씬 더 많은 투자를 집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가 만나는 BOE, CSOT(차이나스타) 등 중국 고객사들이 지금 투자하려는 방향이 있는데, 언론이 보도해왔던 내용과는 조금 다른 방향이다. 중국은 투자가 계속 이뤄질 것이다”

중국 패널사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IR이 끝난 뒤 직접 A 대표에게 이 부분에 관해 물었으나 명확한 답을 들을 순 없었다. 

중국 패널사들은 현재 OLED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BOE의 경우 LCD 영역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해 많은 성장을 이뤄냈으나 공급과잉으로 LCD 업황 악화를 초래해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 OLED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다. CSOT, 티안마 등 다른 업체도 BOE보다는 뒤처졌으나 OLED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중국 패널사들의 동향이다. 구체적인 생산 규모 등에선 업계 관계자마다 조금씩 말이 다를 수 있으나 큰 틀에선 ‘OLED 투자 기조’에 동의하는 편이다. ‘조금 다른 방향’이라는 뜻은 OLED 투자가 아닌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뜻일까. 이에 대해 다른 장비업체들에도 문의했으나 대부분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BOE, CSOT 등 중국 대형 패널사 관계자와 직접 만나 공급계약을 추진하는 장비업체 대표나 임원급에서는 관련 내용을 알 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실제 한 국내 장비업체의 임원급은 뭔가 아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나 결국 정확히 아는 데는 실패했다. A 대표의 발언은 허세였을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특히 국내가 아닌 중국 등 해외 업체의 동향은 뜬소문처럼 명확한 실체 없이 떠다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최근 중국의 ICT(정보통신기술) 굴기가 거세지면서 중국 시장에 대한 괴소문(?)이 더 많아지는 느낌이다. 

이처럼 IR에서 나오는 모든 얘기를 사실로 받아들이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다. IR은 기본적으로 회사와 투자자 간 만남의 장이다. 회사는 투자자를 끌어모으기 위해 조그마한 사실도 크게 부풀려 성장성을 홍보하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사업 계획이나 생산라인 투자 관련 내용이 IR을 할 때마다 번복되거나 수정되는 일도 잦다. 예를 들어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작년 말과 올해 상반기에 진행한 IR에서 계속 말이 바뀌었다. 

작년 말 IR에서는 올해 2월부터 CPI필름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올해 2월 IR에서는 CPI필름 라인 시운전을 올해 6월까지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5월 IR에선 아예 양산 시점을 명확히 발표하지 못했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생산라인 양산 시점은 고객사와 협의가 우선돼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SKC솔믹스도 최근 IR에서 증설 투자 계획을 수정 발표했다. 작년 말부터 진행 중인 약 220억원 규모의 실리콘, 쿼츠 생산라인 증설 작업 완료 시기를 뒤로 미뤘다. 지난 5월 IR에서 회사 측은 “5월까지 제반 공사를 진행하고 6월 초부터 설비를 들여와 6월말까지 세팅 작업을 완료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6월 공시를 통해 ‘9월 완료’로 말을 바꿨다. 8월 IR에서도 9월에 완료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IR에서 나오는 발언은 가려들어야 한다. 명확히 할 수 없는 계획도 마치 확실히 성사되는 양 발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가에 불만을 가진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해 작은 사실도 크게 부풀려진다. IR을 할 때마다 말이 바뀌는 것도 그래서다. 

한편,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홍보팀과 같은 공식 채널을 통해 들을 수 없는 후일담이 흘러나오는 경우도 많다. 

한 반도체 장비업체 사장은 최근 IR을 통해 “2013년 중국 반도체 업체 SMIC 관계자와 만났는데 우리가 SK하이닉스에 장비를 납품한다고 하니 ‘몇 대 파냐’고 묻더라. 그래서 3대 판다고 하자 그 관계자가 ‘빨리 문 닫으라’고 했다. 지금은 35대 정도 팔았다. 그제서야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라고 말했다. 

창립자가 감성적인 회고를 풀어놓는 경우도 있다. A 대표는 IR에서 “20년 전 한 이스라엘 회사를 찾아 갔었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에 회사가 있었다. 큰 술을 엔지니어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굉장히 감동을 받았다. 그 회사는 상당히 탄탄한 길을 걸었다. 저런 회사를 우리나라에서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고 술회했다. 

이 같은 경우는 발언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굳이 시비하지 않아도 된다. 민감한 업계 얘기가 아닌 개인적인 창립 동기를 털어놓는 말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잠시 경계의 마음을 풀고 진솔한 내용에 스며들어 저절로 창립자 추억에 빠져들기도 한다. 

<신현석 기자>shs11@ddaily.co.kr
저작권자 © 딜라이트닷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