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축된 소비심리 돌파구 외 신규 고객 확보·생태계 확장까지 


콧대 높던 애플이 달라졌습니다. 고가 판매 전략을 고수해오던 애플은 올해 스마트폰은 물론 태블릿과 스마트시계까지 보급형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올해 5월 출시됐던 아이폰SE 2세대는 200만원에 달하는 아이폰11프로와 같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채용했습니다. 하지만 가격은 55만원. 아이폰 중 전례 없는 낮은 가격이었습니다. 국내 2분기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으로 꼽히는 등 흥행에 성공했죠. 


애플은 주변기기들까지 ‘가성비’ 갖춘 제품들을 연이어 출시했습니다. 애플이 최근 출시한 신형 아이패드 에어는 플래그십 라인인 아이패드 프로와 외관이 유사하면서도 가격대는 한층 낮습니다. 대표적인 보급형 라인 8세대 아이패드도 아이폰SE와 비슷한 행보입니다. 외관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역시 ‘두뇌’가 똑똑해졌습니다. 가격은 44만9000원부터로 전작과 동일합니다. 스마트시계도 애플워치 시리즈6와 거의 유사하지만 필수기능만 담은 보급형 애플워치SE를 함께 선보였죠. 


삼성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반기 갤럭시A시리즈를 5세대(5G) 이동통신 모델로 어느 때보다 활발히 출시하며 보급형 라인업을 확대했습니다. 내년 초 출시할 갤럭시A42 5G는 삼성전자 제품 중 가장 낮은 가격의 5G 스마트폰이 될 예정입니다. 애플이 5G 시장에 진입하기 전 점유율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이외 보급형 태블릿 갤럭시탭A7과 스마트밴드 갤럭시핏2 모두 올해 안에 국내 출시됩니다. 


오는 23일엔 ‘모든 팬을 위한 삼성 갤럭시 언팩’에서 갤럭시S20팬에디션(FE)을 소개합니다. 갤럭시S20FE는 상반기 출시된 갤럭시S20 부품을 활용해 가격대를 30만원 이상 낮춘 모델입니다. 삼성전자는 플래그십 모델 갤럭시S10과 갤럭시노트10에서도 보급형인 ‘라이트’ 모델을 미국과 유럽 등에서 출시해왔지만 국내에선 출시하지 않았습니다. 프리미엄 모델 인기가 높다는 이유였죠. 이번 갤럭시S20FE는 이례적으로 국내에 출시하고 언팩 행사까지 진행합니다. 


이들이 가격을 낮춘 제품들을 출시하는 건 코로나19 여파로 전세계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소비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영향이 큽니다. 소비자들이 고성능·고가의 제품보단 가성비 높은 제품을 선호하는 행태가 강해진 것이죠. 기업들도 이에 맞춰 실속을 챙기려는 계획입니다.


하지만 보급형 제품 증가 이유가 단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임시방편인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기적인 계획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이들이 스마트폰에 이어 주변기기인 태블릿과 스마트시계·밴드에서도 보급형 모델을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보급형은 프리미엄 제품들보다 수익성은 떨어지지만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데 효과적입니다. 가격 장벽을 낮춘 중저가형 주변기기 제품을 출시해 교체수요 외 신규 고객들을 확보하려는 전략입니다. 


스마트폰 시장은 정체된 반면 스마트시계 시장은 이제 막 성장 중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스마트시계 시장은 약 4200만대가 출하돼 전년 상반기 대비 20% 매출이 증가했습니다. 특히 인도 등 신흥국 중심으로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중저가형 주변기기 제품을 내놓으면서 점유율을 높인다면 결국 스마트폰과의 ‘생태계 확장’까지 노릴 수 있습니다. 저렴한 스마트폰만 찾던 소비자들도 주변 기기들까지 고려해 추가 구매하면 ‘락인 효과’ 역시 더 확대됩니다. 보급형 제품만으로 구성된 또 다른 생태계가 생겨날 수 있는 것이죠. 


애플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수익성까지 챙기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애플TV플러스, 애플 뮤직, 애플 아케이드 등 애플 콘텐츠 서비스를 한 데 묶어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는 '애플 원' 요금제를 선보였습니다.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한 층 강화시키는 요인입니다. 애플 입장에서도 일회성 판매에 그치는 일반 제품과 달리 꾸준한 수익창출을 이끌 수 있습니다. 


제조업체들은 이제 스마트폰 하나로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주변기기는 이제 단순히 주변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스마트폰 및 주변기기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고객 충성도를 늘리는, 결국 스마트폰과의 연동으로 생태계를 확장하는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보급형 제품 출시는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안나 기자>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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