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3분기 에어컨 판매 감소분 TV·제습기 등이 일정부분 상쇄 

[IT전문 미디어 블로그=딜라이트닷넷] 전래동화 ‘우산장수 짚신장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비가 오는 날엔 짚신 파는 아들을, 활짝 갠 날엔 우산 파는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가 등장하죠.

올해 여름 기나긴 장마를 겪은 가전업계가 동화 속 어머니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반기만 해도 올해 여름은 무척 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가 있었습니다. 가전업계는 에어컨 공장을 '풀가동' 하는 등 전년보다 많은 물량을 준비하는 분위기였죠. 전년도 에어컨 판매가 저조했기 때문에 올해는 좀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겪은 것처럼 올해 여름 키워드는 ‘폭염’보다 ‘장마’였습니다. 더워야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리는데 그러지 않았던 거죠. 업계에선 올해 성수기 에어컨 판매량은 전년도보다 더 감소했거나 소폭 증가에 그쳤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 짚신 파는 아들은 허탕을 쳤겠지만 우산 파는 아들은 판매량을 올렸겠죠. 여름에 에어컨 판매가 저조했던 대신 다른 품목들이 주목받았습니다. 건조기는 물론 최근 몇 년간 마른장마로 죽은 줄 알았던 제습기 시장이 살아났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특수 상황도 반영됐습니다. 도쿄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행사가 취소되면서 주춤할 것 같았던 TV 판매량이 증가한 것이죠.

동화에서 지나가는 사람이 말합니다. “맑은 날은 짚신이 잘 팔리고 흐린 날엔 우산이 잘 팔리니 결국 맑은 날과 흐린 날 모두 좋은 것이다”라고요. 이후 어머니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는 포트폴리오를 잘 갖춘 투자 이야기로 비유되곤 합니다. 

가전업계도 이와 연관될 수 있습니다. 성수기 에어컨 판매량은 기업들 3분기 실적에 반영되는데요. 에어컨 판매 감소분을 TV·제습기·식기세척기 등 다른 가전들이 일정 부분 상쇄시켰다는 반응입니다. 결과적으로 전년동기대비 비슷한 실적일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물론 삼성전자나 LG전자 예상 실적처럼 기대 이상으로 좋은 결과를 기록하는 예외적 경우도 있지만요.

다만 현실에선 남은 과제가 하나 더 남아있습니다. 대량으로 쌓인 에어컨 재고를 처리해야하죠.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에어컨이 사계절 제품으로 변모 중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날씨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제품으로 꼽힙니다. 다른 제품들과 달리 에어컨은 할인율을 높여 판매한다 해도 덥다는 위기의식이 없는 한 인기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적극적인 판촉행사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입니다. 주로 입주 예정된 아파트 주변 매장에선 혼수·이사 가전이 집중되는 만큼 가전 매장들은 지역 차원으로 대응할 수도 있을 듯하고요. 제조업체들은 연초 신제품 발표 후 시간이 지나면 전년도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해 ‘가성비’ 제품을 찾는 소비자를 공략합니다. 가전업계가 사계절 가전을 강조하는 이유는 더이상 우산장수 짚신장수 마음으로 여름을 맞고 싶지 않기 때문인가 봅니다.

<이안나 기자>anna@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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