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테크핀(Tech-FiN)’이라는 단어가 자주 들린다. 테크핀이란 정보기술(IT)기업이 금융서비스와 결합해 금융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3-4년간 국내 금융시장에 금융과 IT의 결합을 의미하는 핀테크(Fin-Tech)가 화두였는데 이제는 테크핀이 서서히 자신들의 지분을 올리는 모양새다. 

핀테크와 테크핀은 단어의 앞뒤만 바꿔놓은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테크핀은 금융 시장의 헤게모니(Hegemony)가 변화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의 핀테크는 기존 금융사가 시장을 열어주고 IT기업이 여기에 들어오는 모양새를 취했다. 

결국 국내 핀테크 시장은 금융사와 금융규제당국이 IT기업에 특정 분야의 시장을 열어주면서 형성된 허락된 시장이라는 평가가 다분하다. 금융서비스가 고객에게 충족하고 있지 못한 부분을 자연스럽게 긁어주면서 시장에 진입한 외국의 핀테크 사례와 달리 국내의 경우 전형적인 규제 시장에서 지루한 허가 과정을 밟으며 핀테크 시장이 성장해 왔다. 

하지만 테크핀은 금융 시장에서의 지분이 없었던 IT기업들이 전면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월마트는 국제송금업체 머니그램인터내셔널과 제휴해 ‘월마트투월드(Wallmart2World)’ 서비스에 나섰다. 이 서비스는 월마트 고객이 전세계 200여개국의 나라에 송금이 가능한 금융서비스다. 오프라인 유통채널과 ICT기술의 조합으로 전 세계 20억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비은행권 인구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한다. 

동남아의 ‘우버’로 불리는 ‘그랩(Grab)’은 ‘그랩 파이낸셜’을 출시하고 대출, 보험 등의 산업에 진입하고 있다. 그랩으로 구축한 생태계를 기반으로 금융서비스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프라인 지점을 통한 금융서비스가 상대적으로 척박한 동남아 지역에서 교통관련 공유경제 모델을 제공하고 있는 그랩은 이러한 서비스를 기반으로 전자금융 서비스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금융 생태계가 변화하고 있는 것도 테크핀 세력의 준동에 일조하고 있다.

지난 1월 유럽연합(EU)에서 PSD2가 시행되면서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알리바바, 텐센트와 같은 글로벌 ICT 사업자의 금융시장 진출이 본격화됐다. 데이터 주권이 기업(은행)에게서 고객(개인)으로 넘어가면서 부터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의 개인정보보호법(GDPR)이 발효된 것도 ICT 기업에게 기회로 다가온다. 

개인데이터에 대한 처리 방법 권한을 개인에게 돌려줌으로서 그동안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다양한 인사이트를 뽑아내왔던 ICT기업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금융사들이 디지털 관련 인력을 적극적으로 뽑겠다고 한 것도 이러한 테크핀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IT업체와의 경쟁을 위해선 금융사 스스로도 IT역량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태생적인 DNA가 다른 상황에서 금융DNA가 승리할 지 IT의 DNA가 승리할 지는 지켜봐야 한다. 금융사와 IT기업의 본격적인 서비스 경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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