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탈(脫)일본 속도를 높이고 있다.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일본의존도를 낮춰가는 과정을 겪는 중이다. 다만 소재·부품·장비(이하 소부장) 국산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 7월 초 일본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종의 수출 허가를 강화했다. 대상은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다. 이후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면서 추가 규제도 우려되고 있다. 블랭크마스크, 포토마스크, 실리콘웨이퍼, 섀도마스크(FMM) 등이 가능성 높은 품목들이다.

지난해 기준 소재 3종의 일본 비중은 상당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 포토레지스트는 각각 87.0%, 93.1%가 일본산이다. 불화수소의 경우 41.9%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고순도 제품은 90%를 상회한다. 이들 제품의 총 수입액은 3억9000만달러(약 4635억원)이다. 대일 수입액의 0.7%에 불과하지만, 제조 공정의 핵심 소재인 만큼 실질적 비중은 크다.

상대적으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국산화가 수월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제품은 불소 처리를 통해 열 안정성과 강도 등의 특성을 강화한 필름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업체들이 기술력과 양산능력을 모두 확보한 상태다. 반면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는 상황이 다르다. 

세정 및 식각 공정에 활용되는 불화수소는 액체형(에천트)과 기체형(건식가스)으로 나뉜다. 에천트는 내년부터 일부 대체 가능하지만, 건식가스는 개발 초기에 머물러 있다. 그마저도 일본 스텔라 제품의 순도 99.9999999999%(트웰브나인)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디스플레이용은 비교적 순도 기준이 낮아 국산화 속도가 빠를 수 있다. 다만 반도체용 제품은 완전 대체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포토레지스트는 광화학적 특성을 이용, 반도체 웨이퍼나 디스플레이 기판상에 도포되는 물질이다. 관련 기술이 국내에 부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차세대 공정으로 불리는 극자외선(EUV)용은 개발조차도 안 된 상태다. 


긍정적인 요소도 있다. 6개월 이상 소요될 예정이었던 불화수소 테스트가 2개월 만에 마무리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소재 업계 관계자는 “순도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조만간 일부 공정에서 국산 제품을 사용할 수 있다”며 “순차적으로 순도를 높여가면, 일본의존도 역시 자연스럽게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가 규제 우려 제품들도 전망이 엇갈린다. 블랭크마스크와 포토마스크는 국산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블랭크마스크는 포토마스크의 원재료, 포토마스크는 노광 공정에서 패턴을 새기는 데 필요한 부품이다. 다만 포토레지스트와 마찬가지로 EUV용은 아직이다.

반도체 원재료 실리콘웨이퍼와 디스플레이 증착 과정의 핵심인 FMM은 국산화 전망이 밝지 않다. 웨이퍼는 국내에서 SK실트론 외에는 눈에 띄는 업체가 없다. FMM은 제조 기술은 확보했지만, 기술 난도가 높은 탓에 양산성 획득이 어렵다는 평가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언론에서 언급되는 소재, 부품별로 처한 상황이 조금씩 다르다”며 “분명한 건 2~3년 뒤에는 대다수 품목의 일본산 사용 빈도가 많이 낮아져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일본의존도만 낮춰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의견도 나왔다. 반도체 테스트 업체 관계자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일본이 아닌 중국, 유럽 등과 거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당장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일본과 그랬던 것처럼 다른 국가와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중국 중국과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가 그 예”라고 강조했다. 최대한 자체 수급이 가능한 산업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반도체·디스플레이 장비도 국산화로 가는 길은 험난하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 정도다. 외국(80%)산 가운데 일본 비중은 32.0%다. 네덜란드(31.6%), 미국(25.0%) 등보다 앞선다. 디스플레이의 경우 국산화율이 반도체보다는 높지만, 수입품 일본 비중이 82.9%다.

장비 업체 관계자는 “소재, 부품과 비교해 장비는 개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업체별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당분간 외국 제품에 의존하는 분위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도현 기자>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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